대한민국French Korean Chamber of Commerce and Industry

Corée du Sud
대한민국한국의 발견한불수교역사프랑스 대대> 참전한 프랑스 군인들

참전한 프랑스 군인들

1950년 6월 25일 : 북한의 남침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했다. 처음에는 북한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한국군은 무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소련의 지원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여섯 개의 보병 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북한의 보병 사단들은 하나같이 T34 탱크 150대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중포 사단들도 있었고, 야크(Yak) 요격기와 일루신(Ilyouchine) 폭격기 150대도 갖춰져 있었다. 마오쩌둥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중국군 3만 명과 함께 손을 잡은 북한 정규군 13만 5천 명은 민병대 출신이며, 탈환한 지역을 점유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북한군의 병력을 이루고 있었다. 반면, 한국군은 5개의 보병사단을 정렬시키기는 했으나, 보병사단은 하나같이 탱크도 전혀 없었고, 중포도 거의 없었고, 전투기도 없었다. 한 마디로 한국군은 무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2개월도 채 안 되어 한국군은 부산 밖에 방어하지 못했다.

 

1950년 9월-10월 : 유엔군의 반격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한국군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로 하고, 북한을 침략국으로 규정했다. 미국과 연합군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로부터 승인을 얻어낼 수 있다. 당시 소련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한해전 내전에서 승리한 중화 인민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자 이사회에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리하여 유엔은 연합군을 구성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 있던 더글라스 맥아더는 한국전에 참여하는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유엔 연합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으로 상륙하여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하여 반격을 시도했다. 그리고 2개월도 채 안 되어, 장비 면에서, 특히 공군력이 상당히 우세했던 유엔군은 서울을 탈환하게 되었고, 이어서 평양까지 탈환하게 된다. 10월 말에는 미국군이 압록강 남쪽 연안에 이르렀다. 이어서 북한의 동북쪽 국경에 해당되는 두만강 앞에 있는 한국의 마지막 항구인 청진도 유엔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Bookmark and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