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 대한 최초의 연구들
한국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우선 한국어에 익숙해져야 했다. 이들 선교사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분석한 최초의 서방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덕분에 1869년에 최초의 불한사전이 탄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최초의 불한사전은 활판본으로 출간되지는 못했다(박스기사 참조).
1880년, 리델(Ridel) 주교와 선교사들이 편찬한 첫 불한사전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 해, 프랑스어로 편찬 된 최초의 한글 문법이 출간되었다. 이 두 권의 자료는 상당히 특별하다. 당시, 영국인과 독일인들이 불한사전과 프랑스어판 한글 문법관련 원고들을 각각 자국의 언어로 번역, 출간하고자 리델 주교에게 원고들을 팔라고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애국심이 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삽입 : 불한 사전
표제어 1만 3백 28개로 이루어진 최초의 불한사전은 다시 육필본으로 필사되어 선교사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오늘 날, 이 육필본은 네 권밖에 남아있지 않다. 한국 교회사 연구소는 리샤르(Richard) 신부가 1869년 3월 26일에 만주 차코푸(Tchakopu)에서 필사한 불한사전을 모델로 하여 2004년에 첫 출간했다.
<19세기> 한국 교회사 연구소의 강이연 책임 연구원이 2004년 불한사전 서문에서 밝힌 글이다. <한국어로 소개된 단어와 용례를 모두 수집한 자료라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며, 이를 통해 한국어를 문체와 텍스트적 차원에서 연구할 수 있다. 아울러 19세기 당시 한국사회에 나타난 정치, 외교, 사회, 문화와 관련한 흥미로운 점들을 밝혀낼 수 있다. 본 사전을 통해 19세기 한국 속으로 빠져 보자.>
한국 식물군에 대한 연구
1856년에 한국에 들어 온 장 앙투안 푸르티에(Jean-Antoine Pourthié) 신부는 학문연구를 아주 좋아하는 젊은 사제였다. 1866년에 순교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에게 엄격했던 장 앙투안 푸르티에 신부는 한국의 식물군, 지질, 동물군에 관해 많은 메모를 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자료들 중 자연역사 박물관에 전해진 건 겨우 서신 몇 장뿐이다. 이 서신들에서 장 앙투안 푸르테이 신부는 한국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식물군과 동물군에 대해 상당부분 알리고 있다.
60년 후, 에밀 타케(Emile Taquet) 신부는 한국 남서쪽에 위치한 목포에 정착했다. 그는 거기서 한국의 여러 섬들을 관찰했다. 여기에는 제주도도 포함되었다. 장 앙투안 푸르티에 신부와 마찬가지로 에밀 타케 신부도 식물학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시냇물에서부터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이르기까지 거리는 약 8킬로미터인데, 이 일대 전체에 걸쳐 상당히 다양한 식물군이 분포해 있습니다. 이곳을 산책하면서 이토록 많은 식물들을 수집할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에밀 타케 신부가 쓴 서신 중 하나에 기록된 글이다.
에밀 타케 신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식물 연구에 전념했다. 그리하여 그는 여행을 다닐 때마다 식물들을 채집하여 연구한 후 유럽의 여러 박물관에 보냈다. 점차 에밀 타케 신부는 대단한 식물학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 결과 오늘 날,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여러 식물들이 명칭을 갖게 되었다. 예 : 드뤼옵트리 타케티(Dryopteris Taqueti, 고사리 종류), 로자 타케티(Rosa Taqueti, 찔레꽃 종류), 디플라지움 타케(Diplazium Taquet, 비늘 고사리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