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프랑스인들
1827년, 레옹 12(Léon XII)세 신부는 파리 해외 선교단에게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벌일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에 외국인들은 한국 땅을 밟을 수 없었으며 한국에서의 포교 활동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파리 해외 선교단은 한국에서 포교 활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이리하여 1836년에 피에르 모방(Pierre Maubant) 신부는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프랑스인이 된다. 피에르 모방 신부는 신의주 국경 도시 성벽을 지나는 운하를 기어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해, 자크 샤스탕(Jacques Chastan) 신부, 이어서 로랑 앵베르(Laurent Imbert) 신부가 한국에 들어왔다. 이들 세 명의 선교사들은 각자 떨어져 숨어서 지냈다.
한국과 프랑스가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반세기 전, 프랑스 신부 스물아홉 명이 먼저 떠난 선교사 세 명을 따라, 목숨을 무릅쓰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 스물아홉 명의 프랑스 선교사들 중 열 두 명은 1839년에서 1866년 사이에 천주교인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그래서 피에르 모방 신부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고, 젊은이 세 명을 마카오에 보내 사제직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들 세 명의 젊은이 중 두 명은 훗날 최초의 한국인 신부가 되었다. 이들은 서양언어, 즉 라틴어와 약간의 프랑스어를 공부한 최초의 한국인들이었다.
조선왕조와 프랑스와의 첫 번째 만남
프랑스 신부들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프랑스는 분개했다. 이리하여 프랑스의 로즈(Roze) 제독은 1866년에 전함 일곱 대를 이끌고 바다를 통해 한국으로 가서 강화도를 포위한 후 의괘들을 압류해 갔다. 이 의괘들은 지금도 한국과 프랑스의 협상 대상이 되고 있다. 1886년, 마침내 한국의 천주교인들은 종교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서신 - 유일한 증언 자료
피에르 모방 신부가 1836년에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 한국은 서방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다. 이후 50년 동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공부한 선교사들은 머나먼 미지의 땅 한국을 프랑스인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프랑스 선교사들은 파리 해외 선교단과 가족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한국에서 목격한 사건들, 그리고 한국의 관례와 풍습을 알렸다.
그리하여 한국 땅을 단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던 샤를르 달레(Charles Dallet) 신부는 훗날 이 중요한 서신을 열심히 연구하여《한국 교회사(L'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의 소개글을 쓰게 된다. 여러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개글에서 샤를르 달레 신부는 한국 사회, 한국 제도의 여러 가지 면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리와 역사에 대해 썼다. 1874년에 출간된 이 훌륭한 자료는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관례와 풍습을 소개한 최초의 책이었다.
프랑스 신부들이 남긴 서신은 현재 파리 해외 선교단 도서관(주소 : Bac 거리 128번지)에 보관되어 있다. 한국 신부들의 편지들, 그리고 한국 교회사를 기록한 자료들은 한국으로 보내져 현재 명동 성당 고문서 자료실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