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 한불우호통상조약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과 한국의 왕 사이에는, 특히 양국 국민들 사이에는 평화와 우호 관계가 지속될 것이며 이는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한불우호통상조약 제1조 1항)
19세기 말, 한국은 주요 서양 열강들을 대상으로 개방정책을 펼치기로 했다. 따라서 한국은 1876년에 부산항, 원산항, 인천항을 개항한 후, 독일, 미국, 영국과 조약을 맺었다. 당시 한국과의 관계 확대는 주중 프랑스 대표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886년 6월 4일에 한불우호통상조약이 처음 맺어졌으며, 1887년 5월 30일에 비준되었다.
이로써 프랑스와 한국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다.
한불우호통상조약의 주요 목표는 세 가지다. 한국과 프랑스의 우호관계를 표명하고, 프랑스 공사관을 설치해 한국에 거류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지위를 보장하고, 여러 조항을 통해 교 역의 초석을 쌓는 일이다.
따라서 한불우호통상조약은 개방을 하려는 한국의 의지와 자국의 국민들을 한반도에 거류할 수 있게 하여 교류를 주선할 수 있도록 하는 기틀을 찾고 싶어하는 프랑스의 기대의 산물이라 하겠다.
그런데 한불우호통상조약의 영향력은 이보다 훨씬 더 컸는데, 프랑스내에서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흐름은 1887년에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이자 프랑스 공식대표로 임명된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 그리고 젊은 통역관이자 서기관인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 : 최초의 주한 프랑스 공사
한불관계의 태동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인물이 있다.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그는 특히 종교 문제와 관련된 협상에 능력을 인정받는 외교관이었다.
북경에서 10년간의 임기를 마친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1887년에 ‘주한 프랑스 공사 및 프랑스 공식 대표’로 임명되었다. 한불우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지 1년이 되던 1887년, 여기에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주한 프랑스 공사로 임명되면서 한불 외교관계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처음에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종교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 당시 선교를 하러 온 외국 신부들은 포교활동을 계속하면서 조선 왕조가 정해준 구역을 벗어나 거류하고 있었다. 조선 왕조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협상자로서의 역할을 놀랄 정도로 헌신적이고 탁월하게 수행하며 종교 문제를 잠재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890년, 한국에서 세운 탁월한 공로를 인정받은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한국에서의 첫 임무를 마치고 승진하여 도쿄, 그 다음엔 탕헤르(Tanger)에서 공사로 발령 받게 되었다.
하지만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프랑스 정부에 청하여 1896년에 다시 한국으로 부임해 와서 총영사 및 공사직을 맡았다. 그가 다시 한국 발령을 원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가족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아내는 한국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1906년 1월까지 약 10년을 서울에서 머물게 된다. 1906년 1월은 한국이 일본과 보호조약을 체결한 후 몇 달이 지난 때였다.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프랑스의 협력을 상당히 촉진시키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프랑스가 끼치는 영향을 높이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1904년에 광산 기술자나 관리를 시작으로 건축가에서부터 도예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있던 외국인 전문가 스물 한 명 중 열 네 명은 프랑스인이었다. 20세기 초, 약 80명의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로서 프랑스는 한국에 거류하는 자국민을 가장 많이 두고 있는 외국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끝으로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한국에서 예술품을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수집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서방세계에 한국의 도자기 및 활판인쇄술의 역사를 알렸으며, 마침내 한국을 설득해 1900년 만국박람회에서 한국관이 마련되도록 했다. 한국관은 여러 번의 수상을 하게 되는 쾌거를 올렸다.